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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미스터리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한 악녀(?) 바토리 에르제베트 이야기

by YDZD 2016.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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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악녀 중에서도 거의 1위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던 바토리 에르제베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헝가리어: Báthory Erzsébet, 체코어: Alžběta Báthoryová 알주베타 바트호리오바[*], 슬로바키아어: Alžbeta Bátoriová 알주베타 바토리오바, 폴란드어: Elżbieta Batory 엘주비에타 바토리[*]; 1560년 8월 7일 (?) - 1614년 8월 21일)는 헝가리 왕국 출신의 귀족이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쇄살인마 가운데 하나로서 후세에는 흡혈귀 전설의 모델이 되었다.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한 행위에 관한 죄상

--> 조사에 따르면, 에르제베트는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소녀들 수백 명을 수시로 납치해 차례로 죽인 후, 그 피로 목욕했다고 한다. 에르제베트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면 젊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어느날 간질 증상이 일어난 에르제베트는 그녀를 부축하려는 하녀의 팔을 깨물어 뜯었다. 하녀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자 그녀의 발작이 멈췄다. 그때부터 에르제베트는 젊은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피를 흘리는 모습을 즐기게 되었다. 체이테 성으로 일하러 들어간 여자들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에르제베트에 의해 피를 쥐어짜인 끝에 성의 정원에 묻히고 만다는 소문이 퍼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그런가 하면 나더스디도 에르제베트의 그러한 잔학한 취미를 알게 되어 살해당한 것이라는 소문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한 소문이 돌아다니고 있었음에도, 체이테 성 주변의 가난한 백성들은 돈과 바꾸기 위해 자신의 딸을 팔아 성 안으로 들여보냈다. 근처 마을로 처녀들을 수집하러 오는 역할은 야노시라는 작은 몸집의 사내가 맡았다. 그리고 에르제베트의 잔혹한 취미를 거든 사람은 일로너라는 추녀와 도르커라는 큰 몸집의 여자였다. 일로너와 도르커는 곡물 저장고로 쓰였던 성 안의 지하실로 처녀들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에르제베트가 보는 앞에서 처녀들에게 고문을 가했다. 때로는 에르제베트 자신이 직접 핀으로 찌르거나 칼로 베기도 했는데, 두 여인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모아 그것을 에르제베트에게 마시도록 했다고 전한다. 또한 에르제베트는 수십 명의 처녀들을 모아 연회를 베풀기도 하였는데, 연회가 끝나면 그녀들을 모두 알몸으로 벗겨 차례차례 죽인 뒤 그 피를 모두 통 속에 모아, 옷을 벗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는 아직 죽지 않은 처녀들의 신음을 들으며 흥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1] 몸상태가 안 좋을 때는 직접 팔이나 가슴,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빨아마시고 그 고기를 먹었다고도 전한다.


나중에 귀족 처녀의 피가 더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토리는 일종의 귀족 여학교를 설립하여 그곳의 여학생들을 희생자로 삼기도 했다.[2]


에르제베트가 이처럼 죽인 여자의 수는 1,568명이 넘었다. 그녀의 일기에는 1600년부터 1610년까지만에도 모두 612명의 여성을 죽였다고 쓰여있다. 또한 죽이는 방법도 해마다 새롭게 고안되었음이, 그녀가 체포된 후 실시된 체이테 성의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알몸의 여자를 쇠꼬챙이와 칼날이 달린 새장처럼 생긴 것에 넣으면 도르래를 이용해 들어올린 후 새장에 설치한 칼날을 조여 난자당한 처녀가 피를 쏟게 만드는 기계나, 복잡한 톱니바퀴가 천천히 돌아가며 몸에서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짜내는 기계 등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




바토리 여왕이 위의 글처럼 실제로 처녀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상상을 해보면 대략 위의 사진 같은 느낌이 들거 같네요. 정말로 끔찍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리고 바토리라고 하면,




요런 고문기구도 떠오르실겁니다. 이미 많은 소설과 게임에 등장하게 된 이 가시가 있는 관은 가히 정말 가학적인 고문기구이자, 사람을 공포에 떨며 기겁을하게 해서 죽이게 만드는 장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정말로 바토리 여왕이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1568명의 여자를 죽였다치면, 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마리앙뚜와네뜨가 살았던 시대보다 200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시기였는데 말입니다.

 

이 당시에도 분명히 소설가가 있었었을테고, 그렇게 많은 여자들이 죽어난다고 하면, 특히나 그 시대의 남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요소는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저는 영화를 한편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바토리 여왕에 관한 영화입니다. 포스터에는 저렇게 이마 옆으로 흘러내리는 피와 머리카락에 뭍어있는 피자국들...

영화의 줄거리는

[백작 부인 엘리자베스 배토리의 소름 끼치는 이야기는 악명이 높기로 유명하다. 이 이야기가 역사학자, 작가, 시인, 극작가, 음악가, 화가 그리고 영화감독에 의해 재 설명되는 장면들로 영화는 구성된다. 배토리 부인은 여인들을 살해하기 전에 살아있는 동안 살을 입으로 찢어 갈겨 그 피로 목욕을 할 정도였다. 그녀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살인자로 불려지고 있고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다.]

 

이렇게 정의하고 있지만, 막상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바토리 여왕에 대해서 다른 관점의 시각을 두게 될겁니다.

이 영화에서는 바토리 여왕은 당시 권력의 희생양으로 보여지는 아주 가냘픈 여인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지도, 막무가내로 여인들을 살해하지도 않았지만, 무엇때문에 그런 누명을 써야했는지에 관해서 영화에서는 설명하고 있는데요.

바토리 여왕이 죽은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바토리 여왕을 피에 굶주린 엽기적인 살인마로 떠올리고 있지만,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이나 처절하게 만들었는지.. 한번쯤 바토리 여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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