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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발리에서 생긴 일(?)

나에게 있었던 발리 여행이란,

by YDZD 2023.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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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들에 핀 들꽃과도 같다. 다만, 그 꽃이 시들어 새로운 씨앗이 날고 날아 들판에서 다시 피기도, 산위로 올라가 산꽃이 되기도, 드물게 누군가의 화분에 심어지도 할 뿐, 사람은 누구나 씨앗으로 시작하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길 뿐]

https://youtu.be/xU12A5S4sPQ

1. Republic of Korea (I don’t wanna die. لا أريد أن أموت.)

안녕하세요. 윤동짓달(YDZD)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제가 지난 시간에 떠난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한 번에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꽤 긴 영상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과거에 모든 걸 홀딱 말아먹은 저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나 많았었거든요. 사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제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버텨야만했습니다. 매일 같이 눈을 뜨자마자 눈물로 시작해서 하루를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야하는 시간에는 잠에 들 수가 없어서 수면제를 먹어보기도 하고, 술을 마셔보기도 했지만 쉽게 잠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물며 수면제를 복용하면 이상하게도 저에게는 수면제 부작용이 심해서 수면제 복용 역시도 쉽게 할 수 없었습니다. 수면제 부작용으로는 저는 분명히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운전을 해서 어디로 간다던가,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어디로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저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도착해서 제가 정신을 차려보면 아내를 처음 만났던 장소에 가서 멍하게 앉아있는 제 자신, 혹은 아내의 납골당에서 정신을 차리는 저였었습니다. 그래서 수면제에는 기댈 수 없어서 술을 마시면 하염없이 울고 우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를 잃고 몇 년 동안 흘린 눈물이 아마 제가 평생을 살아오며 흘린 눈물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고, 앞으로 제가 인생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그 어떤 일들도 이처럼 눈물을 흘리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이 괴로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간혹, 너무 힘든 마음에 주변사람들과 술 한 잔 할 때면 주변 사람들은 아내의 안부를 가끔 묻곤 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내가 죽었다고 이야기를 해야 했었죠. 왜냐하면 이것이 사실이니까. 그러면 위로라고 건네는 말로는 ‘빨리 잊고, 생각하지 말고 새 인생을 살아야지.’ 이런 하찮은 말들이 전부였습니다. 하찮지만 맞는 말입니다. 하찮지만 당연한 말이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상당히 거북할 정도로 거부감이 들었던 게 자신들이 이런 아픔을 직접 당해보았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배우자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도 이런 말을 무덤덤하게 할 수 있을지, 그게 저는 궁금하더군요. 

 

그냥 가만히 술잔이나 따라주면 될 것을, 술잔이나 함께 해주면 될 것을 무슨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것 마냥 위로라는 단어를 앞세워 가르치려하는 그 자체가 너무 싫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위로하는 척하다가 결국 돌아서서는 배우자가 자신의 배우자의 죽음을 막지 못한 이유는 그 만큼 사랑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꽤 적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배우자가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자녀들이 있는 사람들도 있고 말이죠. 사람의 본능 중에 가장 강한 본능이 생존본능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겁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건 모르셨으면 좋겠습니다. 생존본능을 점점 잃어가는 사람 옆에서 아무리 응원해주고, 사랑해주고, 아무리 순간순간 웃게 해주며 안아주어도 순간일 뿐, 무언가 사회적으로 잘못된 규칙의 상황에 놓인 사람의 억울함을 해소해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냥 이정도로만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까 말이죠. 그렇죠. 지나간 일이니 말이죠.

 

그나마 가장 저에게 위로가 되었던 말을 해준 분의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조금 일찍 다른 모양으로 네가 겪은 일일 뿐이지.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일이니까. 너무 아파하지 말고, 억울해하지도 말자. 그리고 다시 한 번 살아보자.’ 

 

모든 기억들을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기억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지울 수가 없는 것이 또 사람 살아가는 세상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계획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눈을 뜨는 좁은 방구석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아내가 생전에 했던 말의 일부를 지키고 싶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살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떠났었습니다.

 

먼저, 여행의 첫 번째는 서울이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서울에서 무슨 여행이냐고 이야기 하실 수도 있으실텐데, 지방에서 몇 년을 거주한 저로서는 서울을 다시 본다는 건 거의 여행과도 같은 순간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내를 만나기 이전에 제가 지냈던 곳곳들을 거닐며 아내와의 추억이 아닌, 오로지 저만의 옛 추억을 회상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며칠 동안 서울의 이곳저곳들을 둘러보고, 존경하는 형님과 밥도 먹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만나고, 그렇게 이틀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2. Indonesia Bali (I was able to breathe. كنت قادرا على التنفس.)

인천공항에서 인도네시아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타보는 비행기였습니다. 제가 탄 비행기는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을 경유해서 가는 코스였습니다. 창이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출발하여, 발리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너무나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고작 슈웅~ 하고, 몇 시간 하늘을 날아 내렸을 뿐인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문화와 언어와 인종과 기후가 너무나도 다른 건 지금에도 상당히 신기하기만 합니다.

 

제가 발리를 첫 번째 여행지로 찾은 이유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한국 드라마 중에 ‘발리에서 생긴 일’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 속에 나오는 발리의 풍경들이 너무나 멋있어서 죽기 전에는 꼭 한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젊으신 분들께서는 이 드라마를 모르실텐데, 저와 비슷한 또래의 분들께서는 이 드라마를 잘 아실 겁니다. 어쨌든 발리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마치고 응우라이 국제공항 밖으로 나오니, 엄청난 열기와 습함이 동시에 엄습하더군요. 대한민국의 여름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한 호텔로 향했습니다. 저는 이때 당시 발리 스미냑에 위치한 U paasha seminyak 이라는 호텔을 예약했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발리까지 직항으로 이동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데, 중간에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에서 대기 시간까지 가져서인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피곤이 엄습해오더군요. 

 

그런데 상당히 놀라웠던 건, 제가 택시를 타고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발리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에 특화가 된 곳이라 그런지 호텔의 직원들이 뛰어나와서 택시의 문을 열어주고 짐을 모두 받아주었습니다. 정말로 VIP 대접받는 느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아무튼 일반 고객들까지 이렇게 반겨주는 서비스에 상당히 놀랍더군요. 짐을 모두 내린 호텔 직원은 곧바로 저를 프론트로 안내했고, 저는 예약을 확인한 후 객실로 곧바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객실까지 짐을 모두 옮겨준 직원은 예상과는 다르게 팁을 따로 요구하지 않았었고, 짐을 모두 객실 안에 놓아준 후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더군요. 저는 그 직원을 다시 불러 소정의 팁을 챙겨줬습니다. 정말로 작게라도 팁을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더군요. 그렇게 직원에게 팁을 건네고 객실의 문을 닫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현타가 오더군요. 현타? 너무 웃기죠? 대한민국에서도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는데, 발리에까지 도착해서 현타가 온다... 너무나 아이러니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느낀 그 고통스러움과 발리에서 느낀 현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U paasha seminyak 호텔 객실 안에서 조용히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봤습니다. 머리는 듬성듬성 원형탈모가 와있는 상태였고, 살은 고작 몇 년 만에 27킬로나 쪄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모습. 고작 몇 년 만에 저는 이렇게 변했고, 30대 중반에서 40대가 되었고, 이렇게 변한 낯설은 나의 모습을 대한민국이 아닌 해외에서 이토록이나 낯설 정도로 고스란히 느낀다는 건 상당히 이상하면서도 이질감마저 드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정말로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일단 짐을 대충 풀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으니 자연스레 잠에 들더군요. 여러분들께서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정말로 몇 년 만에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드문드문 들려오는 오토바이와 차들의 경적소리도, 시내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소리들도, 호텔 창문 밖 식물들이 바람에 부딪치며 스스스~ 하며 내는 그 소리조차도 그저 자장가로 느껴질 뿐, 전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오후 3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눈을 뜨니, 해는 저물어 있었고, 밝은 달이 저에게 손을 흔들 듯 방 안으로 빛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았습니다. 발리에서 보낼 날은 한 달 이상이었으니 말이죠. 호텔 안으로 비치는 달빛은 마치 저에게 이렇게 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봐! 일어나봐! 이곳 멋진 발리에 도착했으니, 늦었더라도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와 뭉게구름들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 별들이 쨋삣째삣 거리며 내는 그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들을 너의 숨소리에 담아 내쉬며 한번 느껴봐.’

 

마치 뭐에 홀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시계를 봤습니다. 밤 9시가 넘었더군요. 대충 머리를 정리하고, 옷을 대충 걸친 다음, 무작정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습니다. 구글 맵도 키지 않고, 그저 발걸음이 향하는 대로 한번 걸어봤습니다. 대략 seminyak을 말하면 대부분 club이나 pub을 떠올리실 텐데, 저는 도착한 첫날에는 시내를 보기 보다는 그저 바다를 보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의 지난 몇 년 동안은 왜인지 그렇게 춥게만 느껴져서 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경직되어있었는데, 발리에서는 너무나 따뜻했고, 그동안 경직되어있었던 모든 것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얼굴과 마음에는 미소가 지어졌고,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조차도 너무나도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늦은 밤이었지만, 길거리에서 구운 옥수수를 파는 사람들, 오토바이 렌탈을 하는 사람들, 맥주를 들고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마사지~ 마사지~라고 말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호객행위를 하는 여인 내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때 마다 발리 사람들은 왜인지 처음 보는 저에게 조차 ‘welcome to bali!’ 라고 말하며 웃으며 미소를 나눠주더군요. 참 신기했습니다. 길거리에서 구운 옥수수를 파는 상인에게 옥수수를 하나 사며 여기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바다로 가려고 하면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옥수수 상인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체, 손짓으로 길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go there’ 

U paasha seminyak 호텔을 기점으로 약 15분 정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레스토랑 안에서 라이브 가수들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중간 중간에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welcome to bali’라는 말을 들으며 걷다보니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제 눈에 비춰진 발리의 해변은 그동안 제가 태어나서 봐온 해변들 중에 최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더군요. 그것도 찬란한 태양이 드리워진 화려한 낮이 아닌, 밤 10시가 훌쩍 넘어 하물며 하늘에는 달과 구름이 함께하고 있었음에도 발리의 바다는 그마저도 한 아름 품은 체 그림 같은 풍경으로 저에게 비춰졌습니다. 

 

늦은 밤 해변을 거니는 연인들, 늦은 밤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음악을 켜고 함께 따라 부르는 사람들, 발리의 해변에서 밤을 즐기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시간은 더욱 더 흘러 아주 늦은 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가고 나서도 발리의 해변은 움직이는 그림처럼 멈추지 않고 ‘welcome to bali’를 웃으며 외치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다시 호텔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seminyak 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화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옷가게들과 레스토랑, 헐리우드 배우들이 다녀갔다는 카페들이 눈에 많이 보였고, 상인들과 마사지 샵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다만, 다른 지역과 조금 비교하자면 seminyak 시내는 약간 도시의 느낌?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이 드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호텔 앞 레스토랑에서 나시고렝이라는 인도네시아 볶음밥도 먹어보고, 미꾸아라는 인도네시아식 국물 라면도 먹어봤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제가 놀랄 정도로 신기했던 건, 음식 맛이 너무나도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bintang이라는 맥주까지 곁들이니, 발리의 다른 휴양지를 보지 않고서도 충분히 휴양을 느끼는 기분이더군요.

 

둘째 날은 딱히 다른 곳들을 다닐 계획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냥 seminyak 안에서 하루를 보내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편했습니다. 밖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서 마사지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발리에서는 마사지 문화가 발전되어 있어서 호텔에서도 자체적으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그냥 밖에서 받는 것보다는 호텔 직원 분들도 충분히 친절했고, 가격표가 있는 메뉴가 있어서 호텔에서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발리에서는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이 모두 감동스러웠습니다. 프론트에 마사지를 받겠다고 하고, 가격을 지불한 다음 객실로 올라오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성 두 분이 객실로 왔습니다. 

 

여성 두 분께서는 마사지 침대와 마사지용품을 챙겨왔고, 이내 제 객실에 세팅을 했습니다. 마사지를 받은 기분은 이러했습니다. 마사지를 하는 동안 두 마사지사는 저에게 심심하지 않도록 많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배울만했던 게 무엇이었느냐면 제가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 두 분께서는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영어를 학습시켜주는 것처럼 간단한 인사부터 천천히 말하며 대화를 유도하더군요.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마사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동안 경직되어있던 제 근육들에게 편안함을 마치 학습이라도 시켜주는 듯이 무리하지 않은 힘으로 천천히 몸을 풀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이때 받은 마사지의 느낌은 아마 제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마사지도 끝나고 단 이틀 만에 몸과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어떤 휴양지를 체험한 것도 아니었고, 그 어떤 문화 유적지를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단 이틀 만에 몸과 마음이 이토록이나 편안해질 수 있다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인근의 그릴 집으로 향했습니다. 당연히 혼자서 말이죠. 그릴 집에 메뉴를 주문하고, 발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반해버린 맥주 bintang을 주문한 다음, 가만히 그릴집 라이브 가수가 부르는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발리에서 해야 하는 일들에 관해서 말이죠. 

 

한 달 동안 지낼 빌라를 구하는 것, 가보고 싶었던 관광지와 사원들, 보고 싶었던 공연들을 보는 것, 그리고 발리를 느끼는 것.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였습니다. 사람들은 혼자서 여행을 하면 심심하지 않느냐? 외롭지 않느냐?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견해인데, 발리를 여행한다는 것. 어딘가를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적어도 발리에서 만큼은 홀로 발리를 느끼며 온전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발리의 모든 사람들이 친구처럼 느껴졌고, 처음 만나는 이들조차도 낯설지 않을 정도로 친해질 수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죠. 발리는 저에게 이런 곳이었습니다. 

 

맥주에 한껏 취한 체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한껏 더 개운한 기분으로 일어났습니다. 참 신기하죠? 맥주를 한껏 취할 정도로 마셨음에도 속이 쓰리거나 머리가 아프지 않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말이죠. 일어나서 셋째 날은 제가 묶을 빌라를 찾아다녔습니다. 짱구쪽으로 정할까? 꾸따쪽으로 정할까? 스미냑쪽으로 정할까? 아니면 완전히 쌩뚱 맞게 사누르쪽으로 정할까? 물론, 우붓이나 울루와뚜 쪽으로 정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는 왜인지 앞서 말한 쪽으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맞지 않는 곳도 있었고, 사진이나 유튜브 영상과 다른 곳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니다가 눈에 들어온 빌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Dewantara keroboken villas 였습니다. 풀장도 깨끗했고, 수압도 좋았고, 가격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의 사장님과 직원 분들이 너무나도 친절하고 예뻤습니다. 

한 달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호텔로 가서 짐을 바로 챙겨 빌라에 짐을 풀었습니다. 사장님은 상당히 친절했습니다. 대게 많은 분들께서 발리의 빌라나 호텔 예약하는 것들을 보면 웰컴 드링크를 받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 곳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있으니, 이곳 사장님이 저에게 와서 밥을 먹었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짐을 풀고 밥을 grab로 시켜서 먹을 거라고 하니까, 자신이 맛있는 나시고렝을 배달해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시고렝과 과일주스를 가지고 사장님이 저에게 챙겨주더군요. 상당히 환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고 그릇을 반납한 다음, 한참동안이나 미친 듯이 풀장에서 뛰어 놀았습니다. 제가 나이가 마흔이 될 동안 이렇게 미친 듯이 아무 생각 없이 뛰어 논일도 거의 없을 겁니다.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저의 발리 여행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시작은 첫째 날을 기준으로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왜인지 저는 이렇게 삼일동안 있었던 모두가 시작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잠깐 참고사항으로 이야기 드리자면 발리를 여행하시는 분들 중에 장기로 한 달 이상 지내실 분들께서는 숙소를 정말로 잘 정하셔야합니다. 저처럼 한곳에서 여러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거나, 혹은 친구들을 불러와서 파티를 자주 할 게 아니라면 장기로 지내신다고 하셔도 이동할 때 그냥 이동한 그 주변의 호텔을 이용하시는 것도 괜찮다고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쉽게 말해 해변을 이용하실 분들께서는 해변 인근의 호텔, 울루와뚜쪽으로 보시는 분들께서는 울루와뚜 혹은 짐바란쪽, 사누르쪽으로 보실 분들은 사누르쪽, 우붓 쪽으로 보실 분들은 우붓쪽,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발리 섬이 생각보다 상당히 넓습니다. 그래서 한곳에 숙소를 정하시게 되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때 이동시간이 많다는 걸 그리고 이동시간이 많은 만큼 피로함과 시간, 교통비 등이 든다는 걸 반드시 생각하셔야합니다. 즉, 한 달 정도 지내실거면 발길 닿는 곳에서 에어비앤비나 아고다 어플 사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제가 잠깐 호텔 한곳을 추천 드리고 싶은 곳이 있는데, 발리에 있는 대부분의 모든 호텔의 시설이 나쁘지 않고, 직원 분들이 대부분 친절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만약 여러분들께서 꾸따나 스미냑쪽 해변에서 서핑이나 해수욕을 즐기실 거라면 꾸따와 스미냑 사이, 레기안에 위치한 Puri raja 호텔을 조심스레 추천 드려봅니다. 제가 정말로 편안하게 지낸 곳이었습니다. 가격도 적당하고, 아침식사도 맛있고, 해변과 풀장 모두를 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발리에서 지낸 한 달은 정말로 지상 낙원을 여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곧장 풀장으로 들어가서 잠을 깨고, 간단히 아침을 챙긴 다음,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바닷가를 거닐다가 썬베드에 누워 바다와 더불어 서핑을 타는 사람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 여기저기 오가는 상인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미소들을 감상했고, 어떤 날은 높은 산의 사원에 올라가 사원을 둘러보고, 그곳을 관광 온 사람들과 짧게 한 두 마디 나누며 여유를 공유하기도 하고,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아무 길거리의 펍이나 클럽에서 맥주를 즐기며 관광 온 사람들과 웃음을 공유하기도 하고, 발리에서 지내면서 정말로 이렇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으로 마음이 평안해지더군요.

 

그리고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지내다보면 가끔 결혼 여부에 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제가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면 듣는 친구들은 어떤 심각한 표정을 짓기 보다는 ‘괜찮아!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야.’ 라는 말을 하며 포옹해주더군요. 저는 이것이 정말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에게 정말로 큰 감동도 주었습니다. 저는 발리에 도착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발리는 세계적인 관광지이다보니, 발리 섬으로 오가는 여러 사람들이 많아서 정작 발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정이라는 게 거의 없지 않을까? 그리고 왜인지 이 당시에는 유튜브나 인터넷에 혐오 콘텐츠들이 유행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발리에서 사기 당한 썰, 요금 바가지 당한 썰, 소매치기 당한 썰, 절대로 가면 안 되는 위험한 곳 썰 등등 이런 내용들이 꽤 눈에 많이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발리에 도착해서 이곳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보고, 직접 경험해보니, 유튜브로 본 내용의 사건들은 지극히 드문 케이스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제가 스미냑에서 수영복을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영복을 보다가 입어보고 하는 과정에서 제가 돈 봉투를 옷가게에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 봉투에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약 1000달러 정도의 돈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구입한 수영복을 가방에 대충 우겨 넣고, 옷가게를 나와 길거리를 구경하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4~5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제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hey! korean!‘ 이라고 큰소리를 외치며 제 옆에 오토바이를 대더군요. 얼굴을 보니, 옷가게 점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흘린 돈 봉투를 저에게 건네며 조심하라는 말을 건네고 쿨하게 돌아 가버리더군요. 

 

너무 고마운 마음에 다시 그 가게를 찾아가서 수영복 하나를 더 사고, 고맙다는 인사로 소정의 보상금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은 끝내 그렇게 건네는 돈을 마다하며 발리에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간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행복이라는 말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정말로 감동스럽고, 멋지더군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Grab 택시를 타고, Kuta에 위치한 Vi ai pi 라는 Pub를 갔습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맥주를 시키고 라이브 가수의 음악을 두 세곡 듣다가 사진을 좀 찍으려고 핸드폰을 찾으니, 핸드폰이 없더군요. 아차! 핸드폰을 Grab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었습니다. 불현듯 과거에 대한민국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기억이 났습니다. 

 

그렇게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Vi ai pi 매장의 점장이 저에게 표정이 어둡다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점장에게 핸드폰을 Grab 택시에 두고 내린 것 같다고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점장이 잠깐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Vi ai pi 매장 앞에서 근무 중인 보안요원과 안내직원들에게 가서 뭐라뭐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점장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보안요원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단 3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점장이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Grab 택시 기사와 통화가 이루어졌고, Grab 택시 기사는 저의 핸드폰을 가지고 이동을 할 건데, 손님을 태운 관계로 대략 10~15분 정도 지나서 매장에 도착할거라고 하더군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건지, 그래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점장에게 물어보니, 점장이 이야기 하더군요. 자신들의 매장 앞에 내리는 손님들의 차들은 대략적으로 보안 요원과 안내요원이 기억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발리 섬에는 늘 친구처럼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100%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핸드폰, 여권, 가방 등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점장이 말했습니다. 발리의 소수의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택하는 불쌍한 소수의 사람들이고, 발리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웃길 바라고, 정의롭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저에게 상당히 무언가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하더군요. 이때 저는 과거에 제가 가졌던 잘못된 생각들에 부끄럽기 까지 했습니다. 

 

소매치기를 조심해야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무조건 못 찾는다.

사기꾼들이 많다.

호객행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불편하게 한다.

바가지요금 장사꾼들이 많다.

 

현재에는 해외로 다니시는 분들이 많아서 이런 오해들이 풀리고 있는 상황인데, 한때 유튜브에서는 피해자 코스프레. 즉, 남을 비하거나, 혹은 다른 나라를 비하하거나 과장되게 무언가를 확대해석하는 영상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잘못된 정보들을 보고, 이상한 관념을 가졌던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가지기 전에 반드시 경험이라는 것을 해봐야 하는 것이구나. 경험이란 이래서 중요한 것이구나‘

 

며칠 동안 해변과 시내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잃었던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뱃살이 나왔어도 상의 탈의를 하고 바닷가를 거닐고, 머리에 원형 탈모가 듬성듬성 있음에도 머리를 땋아서 다녀도 보고, 솔직히 대한민국에서는 하기 힘든 행동들이죠? 그런데 발리에서는 달랐습니다. 배가 나왔든, 머리가 벗겨졌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비웃거나 흉보는 웃음이 아닌, 즐기고 행복하기 위해 나누는 웃음들에서 저 또한 그런 즐거움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리에서 어느 정도 지내다가 슬슬 발리의 몇 사원들과 유적지와 몇 곳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발리에는 정말로 유명한 사원들과 장소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GWK park, 울루와뚜 사원, 강가 사원, 렘뿌양 사원, 물의 궁전, 짐바란 시장, 몽키 포레스트, 등등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발리에 한 달 동안 있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원과 공연은 바로 울루와뚜 사원과 울루와뚜 사원에서 해질 무렵에 시작하는 깨짝 댄스였습니다. 깨짝 댄스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힌두 신화 중의 한 장면을 연출한 공연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대단한 것이 무엇이냐면 공연 내내 오로지 육성으로만 리듬을 만들고 공연을 이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잠깐 보실까요?

 

물론, 다른 곳들도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들은 여러분들께서 직접 발리에 가시게 된다면 직접 그 느낌들을 느껴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차후 제가 또다시 발리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방문하는 사원이나 유적지 한곳 한곳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다시 제가 발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말이죠. 

 

이렇게 약 한 달이라는 시간을 조금 넘을 동안 발리에서 지냈었습니다. 발리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발리를 떠나기 이틀 전 이 생각을 골똘히 해봤습니다. 단 한 달이었는데,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더군요. 머리에 원형탈모로 인해 구멍이 쑹쑹 나있던 곳들엔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했고, 급격히 불어있던 체중도 12킬로나 빠져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는 항상 경쟁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졌었고, 주변 사람들조차도 명분을 가지고 인연을 맺었었고, 그 명분이 사라지면 사람도 사라지기 마련이었는데, 발리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유튜버 분들께서 말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사람들이 관광객을 돈으로만 여긴다고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정이라는 것도 느낄 수 없고, 바가지요금, 사기 등이 만연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제가 느낀 발리는 달랐습니다. 세상에서 이토록이나 사람들이 천진난만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물며 관광 도시라서 필요성이 없어지면 쉽게 인연을 잊을 수도 있을 테인데, 이토록이나 깊은 정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발리에서 저는 정말로 커다란 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리를 떠나기 이틀 전 저는 달라진 제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도 조금 열리는 것 같더군요. 사실, 이때 다른 나라 여행을 모두 취소하고, 발리에 그냥 계속 있으면 어떨까? 하는 이런 생각도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꼭 발리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그리고 먼 훗날 제가 다시 발리를 찾았을 때 발리에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들을 해줄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짐을 챙겨 집밖으로 나오니 놀랍게도 dicky라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자신이 공항에 바래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친구를 부르지도 않았었고, 돈을 줄 생각도 없다고 장난스레 이야기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는 그런걸 바라고 온 것이 아니라면서 자신이 그냥 바래다주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친구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습니다. 물론, 공항에 도착해서 약소하지만 약간의 돈을 지불하긴 했습니다. 손사래를 치는데, 돈을 차에 두고 그렇게 내려 저는 공항 안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이야기 하지 못한 발리에서의 기억 남는 장면들을 영상으로 남기며 영상을 줄입니다. 긴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하고, 발리에 가시는 분들께서는 참고가 되는 영상이, 그리고 혹여나 마음이 힘드신 분들께는 발리 여행을 조심스레 추천 드리는 영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꼿’과 ‘꽃’ 정답이 없다. 과거에는 ‘꼿’, 현재에는 ‘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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